필름카메라 재미는 필름 사진이 아니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필름카메라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 라이카며 콘탁스며 다양한 필름카메라를 갖고 필름 사진을 즐겨 찍던 지인이 이제 로모 LC-A 필카 하나만 들고 다니며 6개월에 한 롤을 찍을까 말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다 가슴이 아팠다. 물론, 필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나도 포트라 400 필름을 매주 몇 롤씩 찍다가, 지금은 한 달에 두 롤 정도로 줄였으니 말이다.

필름카메라 필름 재미

심지어 지인이 갖고 있는 로모 LC-A는 약간 토이카메라에 가깝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이 가득하지만, 화질을 기대하고 찍는 카메라는 아니다. 게다가 목측식(거리계를 보고 거리를 짐작해서 초점을 맞추는 방식) 카메라로 찍다 보면 분명 초점도 실패한 사진이 36장 중 몇 장 섞여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완전히 필름 사진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필름 때문은 아닐 것이다.

< 필름카메라, 진정한 재미는 필름이 아니라 필카를 사용하는 경험 그 자체! >

온라인 공간에서 필름 사진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질문을 한다. 필름이 디지털 보다 더 낳습니까? 후보정으로 필름 느낌을 만들 수도 있는데, 뭐 하러 비싼 필름 사진을 찍습니까? 물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치고 후보정으로 필름 느낌을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필름과 디지털은 뭐가 더 좋고 나쁘기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 갖고 있는 매력이 있어 동시에 즐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필름카메라 필름 재미
Leica MP 필름카메라, Lomo Minitar-1, Lomo color 800 필름
필름, 핫셀블라드 Hasselblad
Hasselblad X1D ii

같은 능소화라도 필름(로모 컬러 800감도 필름)과 디지털로 담은 사진은 느낌이 다르다. 질감, 색감, 분위기 등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차이 때문에 필름 카메라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찍는 Leica MP의 경우 찍을 때부터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출을 계산한다. 능소화를 바라보고 적정 노출을 맞춘 다음, 좀 더 화사한 느낌을 주고 싶어 노출을 +1 정도 더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상황을 빨리 찍고 싶은 욕심에 카메라를 손에 쥐고 노출계를 보기 전부터 뇌 출계를 이용해서 노출을 대략 세팅해둔다. 이렇게 하면 파인더를 보며 노출을 보정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며 결과적으로 빨리 찍을 수 있다.

그리고, 적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를 기다려 결과를 본다. 그럼 사진을 찍을 당시의 기억이 그대로 떠오르며 내가 원하는 결과가 제대로 나온 건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희망하는 대로 나왔다면 그때의 즐거움은.. 그냥 참을 수 없이 미소가 배어 나온다 정도로 말하면 될 것 같다.

Leica M6, B+W Softfilter, Kodak ProImage 100
Leica M6, B+W Softfilter, Kodak ProImage 100

ISO 100 감도 필름인데

카메라는 내 어깨에 늘 걸려있다. 하지만, 필름은 한번 넣으면 36장을 다 찍을 때까지 감도가 고정이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 Kodak ProImage 100 필름을 로딩해 두었다. 그런데, 우연히 백화점에서 사진 세트장처럼 만들어 둔 이벤트가 있어 아들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ISO 800 이상은 되어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대부분 상황은 포기하고, 빛이 조금 강한 곳만 1/15초 셔터 스피드로 아들을 기록해 보았다. 미세한 떨림도 사진에 보이니 최대한 숨을 참고 아들이 즐기는 모습을 관찰하다 셔터를 누른다. “후~하~” 오랫동안 숨을 참아 질식하기 직전에 숨을 몰아쉰다. 땀도 송골송골 맺힌다.

바로 이런 경험이 필름 카메라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5년 전 Leica M7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며 필름 사진을 즐기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로딩은 잘 되었을지, 노출은 맞았을지 걱정 반 기대 반 첫 롤을 현상했을 때의 그 즐거움이란… 아직도 내 냉장고에는 매주 한 롤이 상 찍어도 1년 정도 찍을 수 있는 필름이 있다. 그리고 욕심이 가득해서 아직도 몇 달에 한 번씩 필름을 쟁여둔다. 이렇게 하면, 필름이 단종되어도 적어도 1년 정도 이상은 필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오랫동안 필름카메라 경험이 주는 즐거움을 즐기고 싶다!

아들 성장 과정이 그대로 필름에 담겨 있다. 빛에 비추어 보며 늘 행복한 순간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필름사진을 즐기는 팁에 대해서 소개한 영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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